그들과 우리들
10월의 INSIGHT 주제, ‘사람 냄새’. 선정 도서는 손원평의 『아몬드』와 천선란의 『천 개의 파랑』이었습니다. 두 책에서는 남들과는 조금 다르게 뭉친 ‘우리들’을 볼 수 있었는데요. 바깥의 적대와 무관심 속에서 어떻게든 함께 하려 애쓰는 인물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책 속 인물들의 입장에서, ‘그들’은 너무나 쉽게 ‘우리들’에게 상처를 주고 짓밟으려고 합니다. 먼저 손을 내미는 법이라곤 없는 ‘그들’ 사이에서 ‘우리들’은 기꺼이 서로에게 품을 내어주고 손을 잡죠.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요.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비정상’으로 비추어질 두 책의 인물들. 그러나 비정상에 대한 규정은 언제나 상대적이고, 우위를 점하려는 자들로 인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지곤 하죠. 그러한 비뚤어진 시각들, 잘못된 선입관과 편견들, 그리고 계산들을 벗어내야만 진정한 ‘사람’이 될 수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두 소설의 주인공들이 모두 청소년이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아이들은 분명 어리지만, 어리다고 해서 약한 것만은 아니죠. 오히려 어른들은 가지고 있지 못하는 어떤 단단함을 아이들이 보여줄 때가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른들이 쉽게 잃어버리곤 하는 그 단단함의 빛을 간직하고 있는 아이들이야말로 사람다운 온기를 보여주는 것이겠죠.
그럼, 선정도서 두 권을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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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몬드
괴물인 내가 또 다른 괴물을 만났다!영화와도 같은 강렬한 사건과 매혹적인 문체로 시선을 사로잡는 한국형 영 어덜트 소설 『아몬드』. 타인의 감정에 무감각해진 공감 불능인 이 시대에 큰 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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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를 진정으로 들여다보는 일의 소중함.
아주 오랫동안 베스트셀러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소설입니다.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특히 보기 힘든 청소년문학임에도 말이죠. 유명 연예인이 읽은 책으로 처음 화제가 되었지만,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이유는 그 때문만은 아닐 겁니다.
주인공 ‘선윤재’는 편도체의 크기가 작아 감정을 느끼지도 표현하지도 못하는 병을 앓습니다. 또 다른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윤재의 친구 ‘곤이’는 센 척을 하고 다니며 갖가지 사고를 치고 다닙니다. 손원평은 작가의 말에서 이렇게 말했죠.
‘과연 나라면 사랑할 수 있었을까?’ 하고 의심할 만한 두 아이가 만들어졌고 그들이 윤재와 곤이다. 매일매일 아이들이 태어난다.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는, 축복받아 마땅한 아이들이다. (…) 나는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도, 괴물로 만드는 것도 사랑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 이야기를 해 보고 싶었다.
사람의 인생을 좌우하는 것은 작가가 말한 대로 ‘사랑’의 문제가 맞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사랑을 주는 것, 사랑을 주지 않는 것, 올바른 사랑을 주는 것, 잘못된 사랑을 주는 것. 사랑을 받지 못한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문제를 보이게 되는 건 물론 아닙니다. 하지만 평생토록 지울 수 없는 어떠한 결핍, 공허함은 생길 수 있겠죠.
그런 사람에게 다른 누군가 다가와 사랑을 준다면 다행이겠지만, 여러 번 상처를 받게 되면 사람은 무너질 수 있습니다. 고립되고 외로워질수록 황폐해지는 게 사람이니까요. 함께 모여 서로를 채워주는 사람들, 그리고 채워주지 못한 사람들. 그 사람들이 엮이고 엮여 수많은 이야기가 탄생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감정이 없는 윤재는 자신의 생일날, 어떤 남자의 칼에 찔려 피를 흘리는 엄마와 할머니를 보면서도 무표정하게 있었습니다. 슬픔도 분노도, 경악도 두려움도 충격도 없었습니다. 엄마와 할머니를 찔렀던 남자에 대해서도 다만, 왜? 라고 물었을 뿐이죠.
그 남자는 왜 그랬을까. 텔레비전을 부수거나 거울을 깨뜨리지 않고 왜 사람을 죽인 걸까.
왜 더 늦기 전에 누군가가 나서서 도와주지 않았을까. 왜.
반면에 곤이는 싫다는 표현이란 표현은 죄다 하는데요. 윤재와 곤이의 관계는 최악의 밑바닥에서부터 시작됐습니다. 윤재는 자신을 찾아온 윤 교수의 부탁을 받고 윤 교수의 죽어가는 아내를 만났는데요. 윤 교수 부부가 잃어버렸던 아이의 추정 모습이 윤재와 닮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윤재는 윤 교수의 아내 앞에서 자신이 아들인 척해주었고, 윤 교수의 아내는 얼마 후 세상을 떠났습니다.
문제는 잃어버렸던 윤 교수의 ‘진짜’ 아들이 바로 곤이었다는 것. 윤 교수는 곤이가 자신이 원했던 모습이 아닌 것을 보고 실망했었던 겁니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바르고 착하게 자라주지 않아서, 곤이에게 엄마의 마지막을 볼 기회를 주지 않았죠. 그 일은 곤이에게 큰 상처를 남겼습니다. 곤이는 말하자면, 윤재에게 자신의 분노와 슬픔을 풀어냈던 거였습니다.
일방적이었던 싸움으로 시작된 관계가 좋아지기는 쉽지 않을 텐데요. 그러나 작은 편도체 탓에 악감정을 가질 틈이 없는 윤재는, 엄마와 할머니 대신 자신을 돌봐주던 심 박사에게 이렇게 털어놓습니다.
그 애를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게 나쁜 건가요?
이 지점이 상당히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누군가를 알고 싶어 하고 이해하고 싶어 한다는 것. 모든 관계의 시작점이자 애정의 출발점이겠죠. 아무것도 못 느끼는 로봇이라고 손가락질 받던 윤재가, 폭력을 행사함으로써 모든 아이들의 두려움의 대상이 된 곤이를 향해 이런 생각이 들었다는 것 또한 의미심장한 대목일 겁니다.
두 가지를 짚어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로, 어떤 사람에 대해 궁금하다는 건 그 사람에 대해 멋대로 결론 내린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섣부른 기준이나 잣대로 상대를 먼저 평가하지 않는다는 것. 상당히 어려운 일인데요. 사람이라면 무릇 알게 모르게, 자신조차도 모르게 선입관을 갖게 될 때도 있으니까요.
두 번째로는, 그것을 간절히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곤이가 그렇습니다. 곤이는 아버지인 윤 교수가 자신에 대해 실망하고 어머니조차 만나지 못하게 했다는 사실에 너무나 깊게 상처받았지만, 그것을 다른 사람이 알도록 두고 싶지 않았죠. 그래서 욕설과 주먹으로 자신을 무장했습니다.
세상이 잔인한 곳이기 때문에 더 강해져야 한다고, 그 애는 자주 말했다. 그게 곤이가 인생에 대해 내린 결론이었다. (…) 곤이는 제가 약한 아이라는 걸 인정하지 않고 센 척만 했다.
사람들은 곤이가 대체 어떤 앤지 모르겠다고 했지만, 나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단지 아무도 곤이를 들여다보려고 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런데 그런 곤이를, 아무도 들여다보려고 하지 않던 곤이를 다른 누구도 아닌 윤재가 들여다보았습니다. 곤이는 빈말로도 친절하다고는 말할 수 없게 굴었지만, 여름방학 내내 윤재를 찾아와 많은 이야기들을 털어놓았습니다. 설령 다른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둘은 둘만의 공감대를 형성해 가죠. ‘그들’의 시선이 어떻든 ‘우리’에게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니까요.
늙는단 거, 변한다는 거, 알고는 있어도 잘 상상하진 못하잖아.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어. 어쩌면 지금 길 가다 보는 이상한 사람들, 그러니까 뭐 지하철 안에서 혼자 중얼대는 노숙자 아줌마라든가, 무슨 일을 겪은 건지 다리가 양쪽 다 없어서 배로 땅을 밀면서 구걸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도 젊었을 때는 전혀 다른 모습일 수 있었겠구나, 하는 생각.
윤재가 자신을 들여다봄에 따라, 곤이도 다른 사람들을 들여다보게 됩니다. 이해하지도 이해 받고 싶지도 않다는 듯이 강한 척을 하던 곤이가 윤재에게 있어서만큼은 솔직한 속내를 털어놓기도 하면서요.
하지만 한편으로, 세상이란 아이들에게 지나치게 거대한 것이기도 합니다. 윤재를 제외한 다른 아이들이나, 선생님, 그리고 다른 어른들이 인식하고 있는 곤이의 이미지는 바뀌지 않았으니까요. 심지어는 윤 교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수학여행에서 곤이는 학급 회비 봉투를 빼돌렸다는 누명을 쓰게 됩니다. 아무도 의문을 달지 않고 그렇게 믿어 버렸고, ‘도라’라는 다른 아이와 친해지고 있던 윤재는 곤이에게 위로가 되지 못했죠. 윤 교수는 곤이에게 한번 물어보지도 않고 제멋대로 돈을 갚았습니다. 곤이는 결국 폭발합니다.
그래봤자 당신이 나한테 할 수 있는 게 뭔데. 고작해야 교무실로 불러서 협박하거나 아빠라는 새끼한테 전화 걸어서 학교로 찾아오게 하는 게 전부 아니야? 때리고 싶으면 때려, 욕하고 싶으면 욕하고. 참지 마시라고요. 왜 다들 이렇게 솔직하지가 못하냐고.
곤이의 행동은 물론 잘못되었지만, 곤이를 엇나가게 만든 것은 분명 곤이를 둘러싼 세상이겠죠. 정상과 비정상을 함부로 나누고, 자신들은 정상에 들어와 있다고 자신하며 누군가를 ‘비정상’으로 몰아넣고 절대로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 그런 세상 말입니다.
곤이는 어느 날부터 학교에도 집에도 오지 않습니다. 윤 교수는 뒤늦게 후회하죠. 윤재는 곤이가 위험한 곳에 있다는 걸 알면서도, 곤이가 자신의 ‘친구’이기 때문에 곤이를 찾으러 갑니다. 그 과정에서 윤재는 곤이 대신 칼에 찔리게 됩니다.
그런 유의 조직에서 인정받으려면 그럴듯한 무용담, 혹은 훈장이 필요하다. 곤이가 아이들에게 맞으면서 버틴 것도 그런 통과 의례 때문일 거다. 하지만 나는 그런 게 모두 약하다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강한 것을 동경하며 생기는 나약함의 표현. 내가 아는 곤이는 단지 철이 덜 든 열일곱의 남자아이일 뿐이었다. 약해 빠진 주제에 강한 척하는, 물러 터진 놈.
나중에 사람들은 내게 왜 그랬냐고, 왜 끝까지 도망치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나는 제일 쉬운 일을 한 것뿐이라고 말했다. 두려움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을.
다행히 윤재는 살아서 스무 살을 맞았습니다. 아주 오랫동안 의식을 차리지 못했던 엄마도 깨어납니다. 그리고 윤재는 울기도, 웃기도 할 줄 아는 사람이 되죠. 곤이는 심리 치료를 받으며 회복해갑니다.
사실 이 책은 짧은 프롤로그로 시작되었었는데요.
한마디로 말하자면 이 이야기는, 괴물인 내가 또 다른 괴물을 만나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그 끝이 비극일지 희극일지를 여기서 말할 생각은 없다. (…) 사실 어떤 이야기가 비극인지 희극인지는 당신도 나도 누구도, 영원히 알 수 없는 일이다.
결국 ‘본질’이라는 것은 필연적으로 복잡성을 띠게 된다는 것이겠죠. 세상에 이분법으로 가를 수 있는 대상은 거의 없으니까요. 감정을 느낄 수는 없었던 윤재가 실은 그 누구에 대해서도 함부로 비판하거나 평가하지 않았던 것처럼, 거칠고 문제적인 아이였던 곤이가 알고 보면 여리고 약한 성격이었던 것처럼요.
그러니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놓지 않고 이해해보려는 마음이겠습니다. 사람을 단면적으로 판단하지 않고 들여다보려는 노력이요.
『아몬드』는 이렇듯, 한 걸음 나아가 자신의 밖을 내다보고 서로를 들여다보려고 한 두 아이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를 판단하려면 먼저 그 사람을 알아야 하겠죠. 누군가를 헤아려보려는 마음이 어려우면서도 소중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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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파랑
‘한국과학문학상’의 또 다른 성취로 기억될 이름! 우리 SF가 품게 된 가장 따뜻한 물결, 천선란! 2019년 첫 장편소설 『무너진 다리』로 SF 팬들에게 눈도장을 찍었고, 2020년 7월, 소설집 『어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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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속도와 다른 시선을 가지는 법.
『천 개의 파랑』의 장르는 SF이지만 과학이나 기술의 소재보다는 메시지 전달에 더 집중한 듯한 작품인데요. 독자마다 호불호는 갈릴 수 있겠습니다만 오히려 이 점으로 인해 작품이 더 와 닿았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모두 천천히 달리는 연습을 해야 한다.’라는 한 문장에서 시작되었다는 소설입니다. 천선란은 작가 노트에서 “사람들이 너무 바쁘게 산다. 적어도 내가 살아온 세상에서는 전부 바쁜 사람들뿐이었다.”라고 이야기했는데요.
압박감을 많이 느끼게 되는 요즘입니다. 앞으로 끊임없이 달려 나가면서 갖게 되는 초조함과 불안감은, 사람마다 정도는 다르겠지만 다들 비슷한 종류의 것이겠죠. 그러면서 놓치게 되는 것들, 사실은 우리가 진정으로 사랑해야 할 것들을 이 책은 SF라는 장르를 빌려와 이야기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천 개의 파랑』은 휴머노이드인 ‘콜리’의 시점에서 먼저 서술되기 시작합니다. 콜리는 경마용으로 만들어진 휴머노이드였지만, 잘못된―정확히는 학습 휴머노이드를 위한 것이었던―소프트웨어 칩이 들어가면서 다른 휴머노이드 기수(騎手)들은 할 수 없는 ‘생각’이라는 것을 하게 됩니다. 인간의 입장에서는 ‘오류’였던 셈이죠.
여기서 두 가지 말도 안 되는 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하나는 연구생이 칩을 떨어트렸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바닥에 떨어진 칩을 청소 담당자가 다른 칩 상자에 넣었다는 것이다. 둘 다 인간이 아닌 기계였다면 절대로 일으키지 않았을 사고였다. 그러니 콜리는 인간의 실수로 탄생한 셈이다.
콜리가 처음으로 하게 된 ‘생각’은 하늘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화물칸에 실려 이동되고 있던 콜리는 해가 떠오르는 하늘을 보고 ‘찬란하다’라는 단어를 말하게 되는데요. 그런 뒤 자신이 알고 있는 단어가 천 개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렇게 ‘실수의 산물’인 콜리는 경마장의 기수 방에 들어가게 됩니다. 콜리는 곧 자신이 다른 휴머노이드 기수들과 다르다는 것을 깨닫는데요.
콜리는 차츰 함께 있는 다른 휴머노이드는 자신처럼 하늘을 바라보거나 말의 목덜미를 쓸거나 민주에게 말을 걸지 않는다는 걸 알아갔다. 오작동이다.
콜리는 경마장 매니저인 민주와 친해지고, 특히 자신의 파트너인 말 ‘투데이’와 가까워집니다. 그럴수록 투데이의 속력은 빨라졌고 그만큼 몸값이 뛰었죠. 그러나 채찍까지 맞아가며 더 빨리, 더 빠르게 뛰어야 하던 투데이의 관절은 급속도로 악화됩니다. 콜리가 경기 도중 투데이 위에서 떨어진 이유는 그런 투데이를 더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아서였습니다. 그 대가로 콜리는 하반신이 산산이 부서지고 말죠.
그렇게 망가진 콜리를 발견한 사람은 ‘연재’라는 열일곱 살 소녀입니다. 로봇 개발자를 꿈꾸던 연재는 소프트 로봇 연구 프로젝트에 지원했지만 최종 면접에서 떨어지고, 아르바이트를 하던 편의점에서도 휴머노이드에 밀려 잘리는데요. 연재는 언니를 찾아 들어간 경마장에서 콜리를 처음 보게 됩니다.
마지막 아르바이트 월급을 탈탈 털어 콜리를 데리고 온 연재는 콜리를 고쳐줍니다. 새로운 하반신을 얻은 콜리는 점차 연재, 연재의 언니인 은혜, 연재와 은혜의 엄마인 보경이 사는 집에 적응하기 시작합니다. 특히 콜리는 보경과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되는데요. 처음에 보경은 콜리를 부담스러워 했지만, 점차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못했던 속내를 털어놓게 됩니다.
“그 사람이 옆에 있었으면 이런 얘기 전부 그 사람한테 했겠지?” (…) “그리움이 어떤 건지 설명을 부탁해도 될까요?” 보경은 콜리의 질문을 받자마자 깊은 생각에 빠졌다. 콜리는 이가 나간 컵에서 식어가는 커피를 쳐다보며 보경의 말을 기다렸다. “기억을 하나씩 포기하는 거야. 문득문득 생각나지만 그때마다 절대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인정하는 거야.” (…) “그리운 시절로 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현재에서 행복함을 느끼는 거야. 행복한 순간만이 유일하게 그리움을 이겨.”
보경은 젊을 적 배우였습니다. 연습실이 있던 100년도 넘은 시멘트 건물이 폭발하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얼굴에 큰 화상을 입지 않았더라면, 적어도 바로 구조되지 못하고 3일이나 철근 밑에 깔려 있지 않았더라면 보경의 배우 생활은 아마 오래 지속되었을지도 모릅니다.
보경이 꿈과 함께 삶을 놓으려던 순간, 보경은 스스로의 위험도 무릅쓰고 자신을 구해준 소방관과 사랑에 빠집니다. 결혼을 하고, 은혜와 연재를 낳고, 은혜는 척수성 소아마비를 앓게 되었지만 보경은 희망을 놓지 않고 살아가려 했습니다. 낡은 소방복 탓에 소방관이 화재 현장에서 죽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보경은 언젠가, 한강 노을을 바라보며 바퀴를 열심히 굴리는 아이들이 멈추지 않고 달렸으면 좋겠다고 소방관에게 말했다. 삶이 이따금씩 의사도 묻지 않고 제멋대로 방향을 틀어버린다고 할지라도, 그래서 벽에 부딪혀 심한 상처가 난다고 하더라도 다시 일어나 방향을 잡으면 그만인 일이라고. 우리에게 희망이 1%라고 있는 한 그것은 충분히 판을 뒤집을 수 있는 에너지가 될 것이라고.
10년 전 소방개혁을 꿈꾸며, 막대한 예산을 부어 구조용 휴머노이드 다르파 210대를 투입하는 와중에도 소방복을 새것으로 교체할 필요는 없다고 단언했던 것이 소방당국의 의견이었다. 정부의 지원 예산이 휴머노이드 제작에 전부 쏠린 탓에 다른 장비를 교체해줄 예산이 없다는 말이 소방관들 사이에서 떠돌았다. 조금만 더 버티면 전부 새것으로 교체해주겠다는 위로를 믿었지만 꼬박 10년 가까이 지나도록 장비 교체 따위는 이뤄지지 않았다.
아무리 기술이 발달해도 세상은 변하지 않았던 것이죠. 기술은 인간을 위한 것이되 인간의 편이 아니었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물리적인 결과에만 집착한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의 눈에 ‘우리들’의 작은 고통 따위들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은혜도 그 고통을 떠안아야 했습니다.
소방관이 죽은 뒤로 보경은 삶에 여유를 낼 수 없었고, 그 여유에는 물리적인 영역도 해당되었습니다. 돈이 없어 은혜에게 생체 적합성 의족을 해줄 수 없었던 보경은 은혜에게 부채감을 느꼈고, 은혜 역시 그런 보경에게 바라는 것이 없어졌죠. 은혜는 수동 휠체어를 타고 다녀야 했습니다. 은혜는 그 신체적 불편함과 함께, 사람들의 시선이라는 부담도 져야 했죠.
웃어야 한다. 사람들이 은혜에게 바라는 건 어떤 불굴의 상황도 웃음으로 이겨내는 긍정의 힘이었다. 은혜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안다. 그렇지만 은혜는 그렇게 호락호락 그들 삶의 위안과 희망이 되고 싶지 않았다.
휠체어를 끌고 경마장에 다녀오는 일이 얼마만큼의 긴 모험이 될지, 어떤 위험을 만나게 될지, 어떤 수모를 감당해야 할지 알 수 없었으므로 은혜는 길을 나서기 전에 마음을 다잡는 시간이 필요했다. 은혜에게 집 밖 세상은 맵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서바이벌 게임이었다. 주된 공격은 시선이었고, 들어가지 못하는 가게들이 배경으로 지나갔으며, 가방에는 HP 회복을 위한 식량과 물이 구비되어 있었다.
또한 ‘우리들’에는 인간들만 포함되지는 않습니다. 인간들로 인해 죽어가지만, 동물원이나 보호구역에 갇혀 ‘인간들에 의해서만’ 살 수 있게 된 동물들도 들어가죠. 경마장으로 정기 검진을 나가는 수의사 복희는 동물들에게도 나노봇 내시경을 사용할 수 있게 해달라고 여러 번 청원을 올렸지만, 한번도 통과되지 않았습니다. 복희는 경주마들의 연골이 다 갈리고, 더 이상 뛰지 못한다는 이유로 안락사 되는 과정을 전부 지켜보며 괴로워합니다.
나노봇을 이용한 내시경을 (…) 동물에게 사용할 정도로 기술과 자본이 충분하지 않다는 표면적인 핑계가 있었지만 그 내막에는 동물이 아픈 것까지 돈을 들여가며 신경 써줄 수 없다는 이유가 있었다.
투데이는 이미 3주 정도 출전하지 못했으므로 추석이 지나는 2주 후까지도 출전 허락을 받지 못한다면 ‘쓸모없는 말’이 될 거였다. 베팅금으로 마방세를 내지 못하는 말들은 얼른 방을 비워주어야 했다. 그래야 더 어리고 빠른 말들이 들어와 돈을 벌어다 주기 때문이었다.
그 속에서 연재, 은혜, 보경, 콜리, 복희와 민주 등이 똘똘 뭉칩니다. 목표는 투데이를 안락사의 위험에서 구해내는 것. 열일곱의 연재와 열아홉의 은혜는 어른들이 하지 못했던 일을 당차게 해나갑니다. 설령 다른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할지라도요.
투데이는 우여곡절 끝에 출전 허락을 받고, 느리게 달리는 특별한 연습을 합니다. 관절에 무리가 가지 않게요. 동시에 연재는 새로 사귄 친구 지수와 로봇 제작 대회에 나가게 됩니다. 연재는 다른 누구도 아닌 언니 은혜를 위해서, 바뀌지 않는 세상 속에 소외받았던 은혜를 위해서 휠체어의 한계를 뛰어넘는 휠체어 로봇을 구상했습니다. 즉 ‘우리들’의 편인 기술을요.
연재와 지수는 기획 발표를 훌륭히 해낸 뒤, 심사위원의 질문을 받습니다. 그리고 연재는 자신이 예전에 답하지 못했었던, 그래서 결국 면접에서 떨어지고 말았던 ‘기술의 발전이 인간에게 무엇을 가져다주느냐’라는 질문에 답을 내립니다.
견문을 넓혀 얻은 아이디어라는 이야기는 하지 못했다. 연재는 아직까지 ‘집’이라는 세상 밖을 나가본 적이 없었다. 심사위원들은 연재의 답을 시시하다고 느낄 것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연재에게 세상은 아직까지 집이 전부인 걸. 그리고 그 집에서조차 세상이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너무나도 많은 걸.
“자유를 위해서는 많은 돈이 필요한 게 아니라 아주 잘 만들어진, 오르지 못하고 넘지 못하는 것이 없는 바퀴만 있으면 돼요. 문명이 계단을 없앨 수 없다면 계단을 오르는 바퀴를 만들면 되잖아요. 기술은 그러기 위해 발전하는 거니까요. 나약한 자를 보조하는 게 아니라, 이미 강한 사람을 더 강하게 만든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연재는 이별을 겪어야 했죠. 바로 콜리와의 이별입니다. 투데이와 자신이 맞춘 ‘호흡’을 소중하게 생각하던 콜리는, 투데이를 위해 자신을 희생합니다. 투데이가 더 수월히 달릴 수 있도록, 자신의 무게가 방해가 되지 않도록 스스로 고삐를 놓고 떨어진 것이죠.
투데이가 한 발자국씩 내디딜 때마다 몸이 떨린다. 처음 주로에 섰을 때처럼. 행복해하고 있군요,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됐어요. 투데이에게 속삭인다. (…) 나는 민주가 화낼 걸 알면서도 고삐를 놓는다. 투데이의 목을 끌어안는다. 투데이의 행복함이 떨림으로, 울림으로, 진동으로 전해진다.
콜리는 로봇이었음에도 다른 사람들은 해주지 못하는 무언가를 보경에게, 연재에게, 은혜에게, 투데이에게 해주었습니다. 결국 콜리는 자각하지 못했지만, 콜리 역시 ‘우리들’의 편에 섰던 기술인 셈입니다.
『천 개의 파랑』은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한 SF 장르로서 결과적으로는 우리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타인에 대한 외면, 점점 더 급해지는 경쟁, 사라져가는 연대. 앞으로 달리기에만 바쁜 현실 속에서, 한번쯤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고 다른 속도로 나아가는 일의 의미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은 어쩌면 크지는 않지만, 오히려 사소하고 따뜻한 일이야말로 정말 어려운 것이 아닐까 합니다. 이번 10월의 <갈피 INSIGHT>, ‘사람 냄새’에서는 ‘다름’을 구별하지 않고, 서로를 포기하지 않고 같이 걸어가며 기꺼이 서로를 위해주는, 그런 연대를 지켜보았습니다. 우리가 ‘우리들’이 될 수 있도록, 작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From. 경북대학교 중앙도서관 BIK 프로그램 소속 팀 ‘갈피’
선택하는 운명 ― 『데미안』 & 『연금술사』 (0) | 2022.01.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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