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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린들이 일구어 낸 세상 ― <피프티 피플> & <팩트풀니스>

갈피 INSIGHT

by 갈피_galpii 2021. 7. 31.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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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과 전체


출처 : Flickr @petmutt

 

7월의 INSIGHT 주제, ‘다른 사람, 넓은 세상’. 선정 도서는 정세랑의 『피프티 피플』과 한스 로슬링의 『팩트풀니스』였습니다. 선정 도서를 공지하며 갈피 인스타그램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었는데요.

 

그리하여, 이제는 ‘나’만 존재하는 세상에서 벗어나 보고자 합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던 다른 인생들은 어떤 모습인지,
우리 사회가 어떤 문제들로 가득 차 있는지.
그 넓은 세상으로 눈을 돌려 보는 건 분명 의미가 있을 거예요.

 

『피프티 피플』과 『팩트풀니스』는 서로 정반대의 방향으로, 이 문제에 대해 절묘하게 답하는 책입니다. 퍼즐을 예로 들어 보면 될까요.

 

출처 : Flickr @ellajphillips

 

우리가 퍼즐의 어떤 한 조각에만 발을 딛고 서 있었다고 친다면, 『피프티 피플』은 그 건너편의, 또 그 옆의 보이지 않던 조각들로 한 걸음 한 걸음 옮겨가게 해줍니다. 반면 『팩트풀니스』는 아예 퍼즐 바깥으로 빠져나와서 그림 전체를 보게 하죠.

어느 쪽이든, 잠깐이나마 세상을 다르게 조우할 수 있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겁니다.

그럼 지금부터 각각의 책을 한 번 들여다보도록 할까요.

 


1. 『피프티 피플』, 정세랑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1306271

 

피프티 피플

우리를 닮은 50명의 주인공이 들려주는 삶의 슬픔과 감동!정세랑의 장편소설 『피프티 피플』. 2016년 1월부터 5월까지 창비 블로그에서 연재되었던 작품으로 수도권의 한 대학병원을 중심으로

book.naver.com

 

주인공이 없는 소설, 그러나 모두가 주인공인 소설.

 

통념을 깨뜨린 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메인 주인공도 없고, 메인 사건도 없죠. 그저 대략 50명의 인물들―실제로는 51명이 나오지만 차마 제목을 ‘피프티원 피플’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고(...)―의 이야기가 각각 짧은 분량으로 실려 있습니다.

많은 이야기들, 많은 인물이 나오지만 어느 것도 부각되지 않습니다. 일상적이면서도 사실적인 소소한 내용들이 주를 이룹니다. 작가의 말에서 정세랑은,

거의 백색에 가까운 하늘색 조각들 (…) 그런 조각들을 쥐었을 때 문득 주인공이 없는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니면 모두가 주인공이라 주인공이 50명쯤 되는 소설, 한사람 한사람은 미색밖에 띠지 않는다 해도 나란히 나란히 자리를 찾아가는 그런 이야기를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래서 『피프티 피플』에 나오는 인물들은 그렇게 눈에 잘 띄지 않는 사람들인 것이겠죠. 우리가 잘 아는 ‘전형적인 주인공’과는 거리가 있는 사람들. 개중에 눈에 들어오는 인물이 있다면, 그 인물이 나와 아주 가깝거나 혹은 아주 멀기 때문일 겁니다.

 

그리고 사람들. 이렇듯 우리와 가깝거나 먼 사람들은 어느 지점에서 서로를 스쳐 가기도 하고, 같은 경험을 겪기도, 그러다가 인연을 맺기도 합니다. 『피프티 피플』에 나오는 51명의―그리고 어쩌면 그 이상의―인물들은 그렇게 다른 인물들과 연결됩니다. 그 교차점이나 연결고리를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한데요.

그렇게 등장하는 인물들 중에는 많은 걸 가진 인물도 있고, 반대로 잃은 인물도 있고, 더는 잃을 게 없는 인물도 있고, 가진 걸 나누어 주려는 인물도 있습니다. 선인, 악인, 또는 독특한 이력이나 경험을 가진 인물들. 중요한 건 모두들 있을 법하다는 것이겠죠. 어쩌면 이 책이 소설이 아닌 일기나 르포르타주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요. 그만큼 이 소설에서는 인물들의 존재 자체가 의미를 지니는 것 같습니다.

 

출처 : Flickr @Miro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은 있기 마련이죠. 그래서 몇몇 인물을 꼽아 보았습니다. ‘배윤나’, ‘김한나’, ‘강한영’, ‘이설아’, 그리고 자신의 장(章)을 가지지는 않지만, ‘승희’까지.

 

배윤나 : 시인이자 대학 강사. 씽크홀 추락 사고를 겪고 공황 발작을 얻는다. 대학교 학과 통폐합 사건을 목격한다.
구절 [살아 있는 게 간발의 차이였다. 그 ‘간발 차’의 감각이 윤나를 괴롭혔다.]
[취업률과 대학평가 때문이라는 건 표면적인 이유고, 실상은 대학이 기업에서 필요로 하는 인재들만 골라 생산해내기를 사회 전체가 원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순종적이지 않은 너희를 원하지 않는다고 대놓고 외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토대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학을 통폐합시킨다. 보이는 토대와 보이지 않는 토대를 다지지 않고 허무는 사람들 말이다.]
한줄 평 “일상적이고 사실적”, “모든 학문의 기초가 되는 인문학이 무시당하는 게 안타깝고 현실적”
김한나 : 영문학과 문헌정보학을 복수 전공하고 계약직 사서를 전전했다. 결국 전공과는 관련 없는 임상시험 책임자가 되어 일한다.
구절 [한나는 책을 사랑하고 사서 일을 사랑했지만 한국에서 사서가 취급받는 방식을 사랑하진 않았다.]
[혼자 있는 게 너무 좋았다. 적정한 수입이 들어오게 된 이후로는 더더욱. 한나의 삶엔 완결성이 있었다. 결여된 것이 없었다. 어딘가 치우친 사람을 만나서 방해받고 싶지 않았다.]
[며칠 후 책을 세심하게 골라 몇 박스를 병원에 가져갔다. 시험 참가자들이 손쉽게 골라 읽을 수 있을 만큼 가볍고 속도가 빠른 책들이었다. (…) 아무도 한나가 사서인 걸 모르지만 한나는 사서로 살 것이다. 앞으로 또 어떤 직업을 갖게 될지 몰라도 비밀리에는 사서일 것이다.]
한줄 평 “현실적이고 일상적, 공감되는 이야기”
강한영 : 인격 장애 남동생과 비리를 저지르는 부모님이 있는 집에서 도망쳐 친구 지연지와 함께 산다.
구절 [동생이 포크로 눈 밑을 찍은 건 지난주의 일이다. (…) 어쩌면 한정은 언젠가 한영을 죽일지도 모른다. 그러면 모두 말하겠지. 그런 일이 있을 줄은 정말 몰랐어요. 모르긴 뭘 몰라. 다들 알고 있으면서 아무도 한영을 보호해주지 않았다. 가까운 가족도 먼 가족도 이웃도 부모님의 지인들도.]
[거짓말 너머는 알고 싶지 않다. 이면의 이경(異景)따위. 표면과 표면만 있는 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싶다.]
한줄 평 “너무 깊고 가까운 관계, 어두운 면까지 속속들이 다 알고 있는 관계는 때로 힘들게 함”
이설아 :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로, 성폭력 및 가정폭력 피해자 지원 시설인 해바라기 센터를 운영한다.
구절 [가장 경멸하는 것도 사람, 가장 사랑하는 것도 사람. 그 괴리 안에서 평생 살아갈 것이다.]
한줄 평 “사람 때문에 힘들어도 그것을 위로해주는 것도 사람”, “가장 이상적인 인물”
승희 : 엄마인 조양선과 둘이 살며 베이글 가게에서 일하던 고등학생. 사귀었던 남자가 집으로 찾아와 빵 칼로 목을 그어 승희를 죽였다.
구절 [270도로 목이 잘린 여자가 실려왔다. 여자라기보다는 여자애였다.] : ‘이기윤’ 이야기
[엄마, 하고 승희가 매달렸는데도 남자는 승희를 억지로 반바퀴 돌렸다. 마치 양선은 잘 모르는 춤의 한 동작 같았다. 힘이 없는 승희가 반원을 그리며 남자의 품 안으로 들어갔고 남자는 그 칼로 승희의 목을 그었다. 너무나도 빨리, 너무나도 깊이.] : ‘조양선’ 이야기
[웃지 않지만 친절한 사람. 윤나는 언젠가 사에 전혀 웃지 않지만 친절한 사람들의 나라에 대해 쓴 적이 있었는데, 이 아이는 꼭 그 나라에서 온 것 같구나, 했던 것이다.] : ‘배윤나’ 이야기
한줄 평 “가장 비극적인 인물”, “누군가에게 온기를 나누어준 사람이 어째서 약자가 되어 죽음을 맞이해야 했는지 생각하게 하는 인물”

 

출처 : https://youngymca.tistory.com/entry/학과통폐합-대담

 

그리고 우리는 가까운 문제부터 출발해 조금 더 먼 문제까지 나아가 보기로 했습니다. 먼저 이야기를 나누어 본 사안은, ‘배윤나’의 대학 통폐합 이야기와 ‘김한나’의 이야기에서 엿볼 수 있는 ‘인문학에 대한 시선’. 저희가 <갈피 INSIGHT>라는 프로젝트를 시작한 이유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점점 인문학과 멀어지고 있는 시대에, 그런 ‘인문학’에게 보내고 있는 시선들 말이죠. 아무래도 팀원 중 셋이 인문대학 소속이라 더더욱 그런 논의가 필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요약하자면 이렇게 될 수 있겠군요.

 

“인문학이 중요한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인문학이 실질적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이미 너무 많은 매체들이, 너무 많은 콘텐츠가 존재합니다. 가볍고 부담이 가지도 않으면서 내 취향에 딱 맞는 것들이요. *확증편향의 시대라고 하죠. 내 관심사에 부합하는 것들만 해도 충분히 넘쳐나니, 그 바깥으로 나가는 일에는 피로감을 느끼게 되곤 합니다. 그러니 인문학, 그중에서도 특히 무게감 있는 주제와 메시지들은 자연스럽게 도태되고 마는 것이겠죠.

*자신의 가치관, 신념, 판단 따위와 부합하는 정보에만 주목하고 그 외의 정보는 무시하는 사고방식.

 

인문학이 실질적으로 어떤 일을 수행하기에는 쉽지 않습니다. 그 사실이 점차 자명해졌기 때문에, 우리 사회가 인문학을 멀리하게 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사서로 더 일하지 못하고 임상시험 책임자가 된 ‘김한나’의 이야기처럼요.

그렇다면 이제 인문학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저희는 이런 의견을 내놓고 싶습니다. 인문학은 ‘철학’이나 ‘문학’과 같은 틀을 넘어서서, ‘우리가 사고하는 과정’을 익히는 것 그 자체라고요.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방법, 흐름에 맞게 정리하는 방법, 그것을 다시 창의적으로 표현하는 방법. 그런 것이 바로 인문학이 아닐까요. 그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우리가 나아가며 답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 사안은, ‘매체와 편견’이었습니다. ‘권혜정’의 이야기에서 비롯된 것이었는데요. 『피프티 피플』에서 권혜정은 취미로 배운 폴 댄스를 딱 한 번, 클럽에서 췄다가 촬영된 영상이 논란이 되어 직무 이동을 당한 인물입니다. 내막을 모르는 우리에게, 매체는 단편적인 찰나만을 포착해서 전달하기도 합니다. 그때 우리는 편견이라는 안경을 쓰고 바라보게 되죠.

수많은 시선과 이미지와 인식들, 그 이면에는 더 긴 이야기가 있을 테고, 우리가 그것을 간과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세 번째로는 우리 사회의 문제적 사건들을 폭넓게 다루어 보았습니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라든지, 건축이나 노동 현장에서의 이야기 등이 그 대상이 될 수 있겠습니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한규익’의 이야기에서, 건축이나 노동 현장에서의 문제점들은 ‘서진곤’, ‘소현재’와 같은 인물들의 이야기에서 살펴볼 수 있었는데요. 그 외에 ‘승희’에게 일어났던 비극적인 사건 역시 생각해볼 여지가 있을 것 같습니다.

모두 막을 수 있었던 사고들, 사건들이죠. 얼마 전 광주광역시에서 있었던 철거 현장 사고처럼, 아직 우리의 곁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들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인재(人災)’들, 사람으로 인한 비극들을 막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사회적인 안전망이 더욱 튼튼하게 갖추어져야 하겠습니다.

 

다만 제법 굵직하게 논의할 수 있는 사안임에도 이렇게 한데 모아 의견을 나눴던 이유는, 『피프티 피플』에서 이런 사건들이 중요하게 조명되지는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조금 아쉬움이 남았는데요. 진중하게 다루어져야 하는 내용임에도 생각보다 묵직하게 그려지지 않았다는 평이 나왔었습니다.

 

출처 : https://pxhere.com/ko/photo/1550037

 

이렇듯 『피프티 피플』은,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내며 다양한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양한 인물들은 서로에게 손을 내밀죠. 이 작품에서 ‘이설아’를 가장 이상적인 인물이라고 평했었죠. ‘이설아’는 자신이 가진 훌륭한 능력과 풍족한 환경을 통해,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최선을 다해 다른 사람들을 돕습니다.

그리고 비록 ‘이설아’보다 가진 것은 없을지라도, 평범하고 일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서로 연결되고 연대합니다. 그때 비로소 ‘타인’은 단순한 ‘타인’이 아니게 되겠죠. 나의 삶에 연관된 사람이 되는 것일 테니까요. 바로 그런 세상을 작가인 정세랑이 바라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아주 작은 미색의 편린들이 단단히 얽혀 만들어내는 세상을요.

 


2. 『팩트풀니스』, 한스 로슬링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4594377

 

팩트풀니스

전 세계 100만부 돌파! 세계 지성계를 사로잡은 글로벌 베스트셀러 마침내 출간!강력한 사실을 바탕으로 세상을 정확하게 바라보는 방법을 담은 혁명적 저작전 세계적으로 확증편향이 기승을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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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나아지고 있다고 믿게 만드는 책.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아래의 문제들을 풀어보시기를 권합니다.

사실 문제1. 오늘날 세계 모든 저소득 국가에서 초등학교를 나온 여성은 얼마나 될까?
A: 20% B: 40% C: 60%

사실 문제3. 지난 20년간 세계 인구에서 극빈층 비율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A: 거의 2배로 늘었다. B: 거의 같다. C: 거의 절반으로 줄었다.

사실 문제9. 오늘날 전 세계 1세 아동 중 어떤 질병이든 예방접종을 받은 비율은 몇 퍼센트일까?
A: 20% B: 50% C: 80%

사실 문제12. 세계 인구 중 어떤 식으로든 전기를 공급받는 비율은 몇 퍼센트일까?
A: 20% B: 50% C: 80%

위 4문제의 정답은, 놀랍게도 모두 C입니다. 가장 긍정적이며 낙관적인 수치이고, 그렇기에 아마 많은 분들이 답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하는 수치죠. 실제로 정답을 맞힌 비율은 극히 낮습니다. 극빈층 비율에 관한 문제인 사실문제3의 정답자 비율은, 가장 높은 스웨덴과 노르웨이조차 25%에 그쳤습니다. 미국은 5%, 한국은 그보다 낮은 4%.

저자인 한스 로슬링은 머리말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테스트에서 점수가 낮았다면, 그런 사람이 한둘이 아님을 기억하라.”

 

우리는 ‘세상이 괜찮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모르고 있다고, 저자는 유쾌하면서도 단호하고 희망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팩트풀니스』를 구성하는 인간의 10가지 잘못된 본능인 [간극 본능, 부정 본능, 직선 본능, 공포 본능, 크기 본능, 일반화 본능, 운명 본능, 단일관점 본능, 비난 본능, 다급함 본능]의 챕터들이 모두 그런 식입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모든 내용이 흥미롭거나 혁명적이지는 않습니다. 저자 자신도 변명하고 있긴 하지만 세상을 낙관적으로만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도 피할 수 없죠. 그러나 유의미한 가르침들이 있고, 어떤 사실들은 이따금 신선한 충격을 주기도 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무엇보다도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범위가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고하는 범위보다 훨씬 더 넓습니다. 5층짜리 건물 옥상에서 보이는 시야와 높은 산 정상에서 보이는 시야는 확연히 차이 나게 마련이니까요.

 

출처 : Flickr @Constantinos Mitsopoulos

 

한스 로슬링이 계속해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세상은 나쁘지만도 않고, 나빠지기만 하지도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결코 현재 상황이 충분히 긍정적이며 우리가 여기에 만족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 세상이 나아지고 있다는 것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더 나아지게 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하죠. 세상이 나빠지고 있다고 믿는 것보다, 우리가 그간 들인 노력이 빛을 발해 세상에 좋은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을 알 때 비로소 그 ‘노력’들에 추진력이 생기게 된다고요.

 

이 책에 따르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사고 작용을 배제해야 합니다. 대상을 양분화하는 것, 현상이 유지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등. 당연한 이야기 같기도 하지만 한스 로슬링은 그것을 ‘본능’이라고 이름 붙이며 경계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면서 한스 로슬링이 내세운 흥미로운 제안 하나는, 세계를 소득 수준에 따라 네 단계로 나누는 것입니다. 세계가 부유한 자와 가난한 자로 나뉘고, 그 둘 사이에는 좁힐 수 없는 차이가 있다고 간주하는 편견을 종식시키기 위한 방법이라고 하는데요. 저자가 제시한 바에 따르면 네 단계는 이렇게 나뉩니다.

 

1단계 하루 1달러를 번다. 맨발로 1시간을 걸어 더러운 물을 길어 온다. 땔나무로 불을 때고, 거무스름한 죽을 먹거나 굶으며, 항생제를 살 수 없어 자식이 죽어간다. (약 10억 인구가 1단계에서 살아간다)
2단계 하루 4달러를 번다. 닭을 사서 계란을 얻고, 샌들과 자전거, 가스레인지를 산다. 물을 길어오는 시간이 줄어든다. 전기가 들어오고 매트리스가 있어 맨바닥에서 자지 않는다. (약 30억 인구가 2단계에서 살아간다)
3단계 하루 16달러를 번다. 수도를 설치하고, 전기를 안정적으로 공급받는다. 냉장고를 구입하고 오토바이를 산다. 더 다양한 요리를 먹는다. 병원비를 지출할 수 있을 정도로 모아둔 돈이 있다. 자식을 고등학교에 진학시킨다. (약 20억 인구가 3단계에서 살아간다)
4단계 하루에 32달러 넘게 번다. 12년 넘게 교육을 받고, 비행기를 타고 휴가를 떠난다. 외식을 하고, 자동차를 산다. 수도, 전기 등을 모두 당연히 공급받는다. 1단계와 2단계를 결정짓는 3달러의 돈이 큰돈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약 10억 인구가 4단계에서 살아간다)

 

이렇게 소득 수준으로 나눈 단계들은 심지어 국가의 경계마저 초월합니다. 같은 국가라도 2단계의 삶을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4단계의 삶을 사는 사람도 있고, 다른 국가라도 같은 3단계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생활양식이 유사합니다.

사람들의 삶을 결정하는 건 국가도 아니고, 문화도, 인종도 더더욱 아니고, ‘소득 수준’이라고 한스 로슬링은 강조합니다. 그리고 많은 국가들이 지난 세월 동안 1단계에서 벗어나 2단계, 3단계, 4단계로 올라섰다고도요. 이 사실을 놓쳤을 때 입게 될 손해도 저자는 제시합니다.

 

가령, 이른바 ‘가난한 국가’의 여성들은 교육도 받지 못한 채 단지 ‘아이를 많이 낳는다’라고만 생각했을 때.

(생리대 제조업자들은) 세계적으로 여성 1인당 출생아 수가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기뻐해야 한다. 집밖에서 일하는, 교육받은 여성이 늘고 있다는 소식도 마찬가지다. 이런 발전은 현재 2,3단계에 살면서 생리를 하는 여성 수십억 인구 사이에서 지난 여러 해 동안 생리대 시장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런데 세계적 생리대 제조업체에서 개최한 국제회의에 참석한 나는 서양 제조업체 대부분이 이런 점을 완전히 놓치고 있다는 걸 알았다. …중략… (2,3단계의 여성들은) 밖에서 일할 때 하루 종일 갈지 않고 쓸 수 있는, 믿을 만하고 값싼 패드를 원한다. 그런 제품을 찾을 수만 있다면 아마도 평생 한 가지 상표만 고집하면서 딸에게도 같은 상품을 추천할 것이다.

엄청난, 아마도 폭발적인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시장 기회를 완전히 놓쳐 버리게 될 것이라고 저자는 지적하고 있습니다. 다른 여러 소비재에도 적용되는 이야기겠죠. 보다 성공 기회를 보장할 수 있는 시장 세분화와 타겟팅은, 세계를 넓게 알고 바로 아는 것으로부터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출처 : Flickr @Mussi Katz

 

특히 한스 로슬링이 이른바 ‘저소득 국가’로 분류되던 나라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실제 삶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또 어떻게 나아질 것인지를 통계를 근거로 들어가며 여러 차례 강조하고 있습니다. 언론이 보여주는 모습들이 만들어낸 고정관념을 반박하면서요. 일면은 일리 있어 보입니다. 10년 동안 언론이 보여주는 아프리카의 모습은 변하지 않았지만, 짧은 기간도 아닌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을 리는 없겠죠.

 

물론 여전히 상황은 나쁘고, 힘든 사람들은 많습니다. 이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상황은 나쁘면서 동시에 나아지고 있기도 하고, 나아지고 있지만 동시에 나쁘기도 하다.”

저자는 그런 자신의 주장에 쐐기를 박기 위해 지난 날 자신이 저질렀던 과오를 고백하기도 합니다. 2013년 아프리카연합 학술회의에서 아프리카 여성 지도자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했던 저자는, 강연 이후에 있었던 일을 털어 놓았습니다. 아프리카연합 사무국장 은코사자나와 나누었던 대화를 말이죠.

은코사자나 : 도표도 훌륭하고 말씀도 잘하시는데, 아무런 비전이 없네요.
한스 로슬링 : 네? 비전이 부족해요? 아프리카 극빈층이 앞으로 20년 안에 역사 속으로 사라질 거라고 말했는데요?
은코사자나 : 맞아요, 극빈층이 사라질 거라고 말했어요. 그게 시작이었고, 거기서 끝났죠. 아프리카 사람들이 극빈층이 사라지는 걸로 만족하면서 적당히 가난하게 사는 정도로 행복해할 거라고 생각하세요? (…) 강연을 마무리하면서, 교수님 손주들이 우리가 건설할 새로운 고속열차를 타고 아프리카를 여행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어요. 그게 어떤 비전인가요? 유럽의 낡은 비전과 뭐가 다르죠? ‘우리’ 손주들도 ‘교수님’ 대륙에 가서 ‘교수님 나라의’ 고속열차를 타고 여행하며, 스웨덴 북쪽에 있다는 이국적인 얼음 호텔에 갈 겁니다.

분명 어디서도 들을 수 없던 이야기이긴 합니다. 우리가 가진 정적인 편견에 경종을 울리는 것도 같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은코사자나의 비전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정말 많은 변화와 발전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나 세계 각국의 지도자들은 당연히 자국의 이익을 가장 우선시하고, 부유한 상류층 중에 진정으로 그러한 변화와 발전을 바라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요. 한스 로슬링의 『팩트풀니스』를 읽으면서도 그가 제시한 가능성이나 비전에 온전히 동의할 수는 없었던 이유입니다.

 

출처 : Flickr @Neerav Bhatt

 

『팩트풀니스』는 더 이상 세상의 편린들에 속지 말라고 이야기하는 책입니다. 자신의 사고를 믿지 말고, 자극적인 언론 보도를 믿지 말고, 객관적인 통계와 수치와 축적되어 온 데이터가 보여주는 ‘사실’의 세계를 보라고 하죠.

물론 넓고 거시적인 감각 역시 필요합니다. 낙관적이고 긍정적인 태도 또한 어느 정도 중요합니다. 희망이 없으면 노력에는 더욱 큰 힘이 들 테니까요. 그럼에도 역시, 아무리 작은 편린일지라도, 여전히 존재하는 고통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 책을 추천하는 이유는 그 양면을 모두 고려하시길 바라는 마음에서죠.

 


 

조각과 전체. 무엇이 먼저인지 논하는 것은 의미가 없을 거라 판단합니다. 타인의 작은 이야기와 세상의 거대한 이야기 모두 ‘나’로부터 벗어나게 해준다는 점에서는 같으니까요. 이번 7월의 <갈피 INSIGHT>, ‘다른 사람, 넓은 세상’에서는 그렇게 시선을 돌려 보는 법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그 과정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From. 경북대학교 중앙도서관 BIK 프로그램 소속 팀 ‘갈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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